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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의 생애
시무책 10조를 상소하다 최치원
9세기 통일신라 말기의 학자이다. 중국 당 나라에서 ‘토황소격문(討黃巢檄文)’으로 문장가로서 이름을 떨쳤으며, 신라로 돌아온 뒤에는 진성여왕에게 시무책을 올려 정치 개혁을 추진하였다. 유교(儒敎)ㆍ불교(佛敎)ㆍ도교(道敎)에 모두 이해가 깊었고, 유ㆍ불ㆍ선 통합 사상을 제시하였다. 수많은 시문(詩文)을 남겨 한문학의 발달에도 기여하였다.
최치원(崔致遠, 857년 ~ 908년 이후)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절도사 고병의 막하에서 《토황소격문》을 지어 당 전역에 문장으로 이름을 떨쳤고,
승무랑 시어사로서 희종 황제로부터 자금어대를 하사받았다.
헌강왕에게 바쳤던 《계원필경》은 한국에서 가장 오래된 개인 문집으로 꼽히며, 《삼국사기》에 실려 있는 《난랑비서(鸞郎碑序)》는
신라 화랑도의 사상적 기반을 말해주는 자료로서 주목받는다.

'계원필경'을 올리다

소년이 인백기천의 노력을 하다

고운 최치원의 여정을 따라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