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nu

최치원의 업적
고운 최치원의 업적을 소개합니다.
유(儒)·불(佛)·선(仙)
통합 사상
새로운 국가체제와 사회질서 확립
“나라에 현묘한 도가 있으니 ‘풍류(風流)’라 한다(國有玄妙之道曰風流). 그 가르침을 베푼 근원은 ‘선사(仙史)’에 상세히 실려 있는데, 실로 삼교(三敎)를 포함하여 중생을 교화한다(設敎之源備詳仙史 實乃包含三敎 接化群生). 들어와 집에서 효도하고 나가서 나라에 충성하는 것은 공자의 가르침이다(且如入則孝於家 出則忠於國 魯司寇之旨也). 무위로 일을 처리하고 말없이 가르침을 행하는 것은 노자의 뜻이다(處無爲之事 行不言之敎 周柱史之宗也). 악한 일은 하지 않고 선을 받들어 행하는 것은 부처의 가르침이다(諸惡莫作 諸善奉行 竺乾太子之化也).”
「토황소격문」을 집필한
최치원
최치원은 그의 막하에서 고변을 대신하여 7월 8일에 '토황소격문'을 지었다. 이 격문은 적장의 간담을 서늘하게 한 명문으로서 문필의 대공을 세웠다. 또한 신라인으로서 당나라 사람들까지 놀라게 한 명문으로 최치원의 명성을 천하에 떨치게 한 글이다
「계원필경」
최치원(崔致遠)의 시문집
『계원필경』 20권의 체재와 내용은 서문을 서두로 하여 권1·2에 표(表) 20수, 권3에 장(狀) 10수, 권4·5에 주장(奏狀) 20수, 권6에 당장(堂狀) 10수, 권7∼10에 별지(別紙) 80수, 권11에 격서(檄書) 4수와 서(書) 6수, 권12·13에 위곡(委曲) 20수, 권14에 거첩(擧牒) 50수, 권15에 재사(齋詞) 15수, 권16에 제문·서(書)·소(疏)·기 10수, 권17에 계(啓)·장 10수, 권18에 서(書)·장·계 25수, 권19에 장·계·별지·잡저 등 20수, 권20에 계·장·별지·제문·시 등 40수로 구성되었다.
「함양상림」들여다보기
상림은 함양읍 서쪽을 흐르고 있는 위천의 냇가에 자리 잡은 호안림이 며 신라진성여왕 때 고운 최치원 선생이 함양태수로 있을 때에 조성한 숲이라고 전한다. 당시에는 지금의 위천수가 함양읍 중앙을 흐르고 있 어 홍수의 피해가 심하였다고 한다. 최치원선생이 둑을 쌓아 강물을 지 금의 위치로 돌리고 강변에 둑을 쌓고 그 둑을 따라 나무를 심어서 지 금까지 이어오는 숲을 조성하였다. 당시에는 이 숲을 대관림이라고 이 름 지어 잘 보호하였으므로 홍수의 피해를 충분히 막을 수 있었다고 한 다. 고운 최치원선생의 치적 중에서 상림은 함양을 대표하여 내세울 수 있는 곳이다.
「고운 최치원선생, 가운루, 우화루를 세우다」
고운사는 신라 신문왕 원년(서기 681년)에 해동 화엄종의 시조이신 의 상대사께서 창건하신 사찰이다. 부용반개형상(연꽃이 반쯤 핀 형국)의 천하명당에 위치한 이 사찰은 원래 高雲寺였다. 신라말 불교와 유교ㆍ도교에 모두 통달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최치원이 여지ㆍ여사 양대사와 함께 가운루(경북 유형문화재 제151호)와 우화루 를 건축한 이후 그의 호인 孤雲을 빌어서 孤雲寺로 바뀌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