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치원문학관
최치원이 남긴 흔적들
- 사산비명(四山碑銘)
①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
경상남도 하동군에 위치한 쌍계사에 있는 통일 신라시대의 비석, 정식 명칭은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 대공탑비(雙磎寺眞鑑禪師大空塔碑)’로 국보 제47호로 지정되어 있다. 진감선사 대공탑비는 범패(梵唄)의 맑은소리로 대중을 교화했던 신라 말의 고승인 진감선사 혜소(慧昭)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기리는 탑비로, 최치원이 그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 진감선사 대공탑비는 범패(梵唄)의 맑은소리로 대중을 교화했던 신라 말의 고승인 진감선사 혜소(慧昭)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기리는 탑비로, 최치원이 그 비문을 짓고 글씨를 썼다.
② 경주 신라 초월산대숭복사비 재현비
숭복사비는 진성여왕 10년에 세웠으며, 최치원이 비문을 짓고 글을 썼다. 비명에는 신라 불교사에서 우뚝한 위치를 차지하는 세 선사(禪師)의 일생 행적과 화엄종 계열의 왕실 원찰(願刹)인 대숭복사의 창건 내력이 적혀있다. 사비명(寺碑銘)의 찬술은 왕건(王巾)의 ‘두타사비명(頭陀寺碑銘)’에서도 그 선례를 찾을 수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전에 유례가 없었던 일로 평가된다.
③ 문경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
봉암사 지증대사 적조탑비는 구산선문(九山禪門)의 하나인 희양산문(曦陽山門)의 개창자 도헌국사(道憲國師), 곧 지증대사(智證大師)의 탑비로, 국보 제315호에 지정되어 있다. 특히 이 비의 비문은 최치원이 지은 것으로 신라의 불교사를 3시기로 나누어 약술하고 도신(道信)-쌍봉(雙峰)-법랑(法朗)-신행(愼行)-준범(遵範)-혜은(慧隱)-도헌(道憲)으로 이어지는 도헌국사의 법계(法系)를 구체적으로 기록하고 있다. 또한 비석의 크기나 귀부와 이수의 조각 수법 등이 통일신라 말기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양식과 기법을 보여주고 있으며, 백제의 소도(蘇塗)에 대한 국내 유일을 기록을 볼 수 있는 사료로 평가된다.
④ 보령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
성주사지 대낭혜화상탑비는 통일신라 시대 만들어진 탑비 중 가장 큰 풍채를 자랑하며, 화려하고 아름다운 조각 기법을 구사해 통일신라 시대 석비를 대표한다. 비문에는 무염 국사의 일생과 업적, 성주사를 일으키고 선종을 전파한 내용이 적혀있으며, 특히 신라의 골품과 고어(古語)를 연구하는 자료로도 귀중하게 활용되고 있다. 당시 최치원이 성주사에 머물면서 통일신라 말기 9산선문 중 성주산문을 크게 일으킨 무염 국사(800∼888년)를 기리기 위해 왕명에 의해 비문을 지었다.
- 「토황소격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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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중국 당나라에서 역적 황소(黃巢)를 치기 위하여 지은 격문
881년(헌강왕7년), 중국에서 황소의 난이 일어나자 토벌총사령관인 고변(高騈)의 휘하로 있던 최치원이[토황소격문]을 지어 황소를 비판했다. 당시 황소가 이 격문을 보다가 자신도 모르게 침상에서 내려앉았다는 일화가 있을 만큼 뛰어난 명문으로 평가된다. [토황소격문]은 [계원필경]에 실려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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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원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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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치원이 계원(회남)에서 문필로 생계를 유지하며 지은 글 모음집
『계원필경』20권의 체재와 내용은 서문을 서두로 하여 권1·2에 표(表) 20수, 권3에 장(狀) 10수, 권4·5에 주장(奏狀) 20수, 권6에 당장(堂狀) 10수, 권7∼10에 별지(別紙) 80수, 권11에 격서(檄書) 4수와 서(書) 6수, 권12·13에 위곡(委曲) 20수, 권14에 거첩(擧牒) 50수, 권15에 재사(齋詞) 15수, 권16에 제문·서(書)·소(疏)·기 10수, 권17에 계(啓)·장 10수, 권18에 서(書)·장·계 25수, 권19에 장·계·별지·잡저 등 20수, 권20에 계·장·별지·제문·시 등 40수로 구성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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